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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참진실

9월 9일
6분 분량




유일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인도자로 오신 선생님께서는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참 진실을 전해 주셨습니다.

     

지금의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를 하거나

오늘날의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의 올바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지닌 문제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중잣대’입니다.

     

기독교 본인들이 정통성이 없고, 사이비 이단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들 외에는 사이비 이단이라며 이중잣대를 들이미는 것입니다.

즉, 자기 종교 외에는 모두 이단이라고 주장하며 폐쇄적 구원론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감히 폐쇄적 구원론을 주장해선 안 되며

사이비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해선 안 됩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기독교의 탄생 시점입니다.

대표적인 기독교의 교파들은 1500년에서 1900년대 사이에 만들어졌습니다.

1세기경 탄생하였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3대 교파인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의 설립시기를 찾아보면,

장로교는 16세기, 감리교는 18세기, 침례교는 1612년 전후로 설립되었습니다.

예슈아님 사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설립된 것이죠.

심지어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지역도 아닌 이방나라 유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파의 설립자가 메시아라서 교파를 만든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유럽에 살던 이방인에 불과합니다.

평범한 인간이 만든 교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즉, 메시아님께서 만든 교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파는 정통성이 없으며 함부로 이단을 주장해선 안 됩니다.

     

두 번째로 열한제자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폐쇄적 구원론을 주장하며 무율법주의 교리를 따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1세기경 정통 교회의 진리를 배우려면 유대인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유대인이 만들었으며, 교회의 시작은 예후다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세기경에 만들어진 정통 교회라면 열한제자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예슈아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기독교가 정말 1세기경의 정통 교회를 계승하고

열한제자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폐쇄적인 구원론이 나올 수 없고

무율법주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슈아님께서는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고,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슈아님의 열한제자분들께서도

토라 계명 규례 할례 예언을 모두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독교가 1세기경의 초대 교회를 계승한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열한제자분들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25

그러나 자유를 주는 완전한 토라를 주시하고 계속 그 토라 안에 머무는 사람은

그 토라를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의 하는 일로 행복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5:3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들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2:4

‘내가 그분을 안다.’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니

이 사람 안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3:2

거룩한 예언자들에 의하여 미리 전해진 말씀들과

여러분의 사도들에 의하여 전해진 구원자의 계명을 기억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위의 성경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열한제자분들은 율법주의로 나아가셨습니다.

1세기경의 정통 교회라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예슈아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신 열한제자분일까요?

아니면 예슈아님을 직접 뵙지도 못한 사도 바울일까요?

당연히 예슈아님의 열한제자분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더하여 열한제자분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유대인을 절대 이교도라고 말하지 못하며, 폐쇄적 구원론을 말하지 못합니다.

유대인을 두고 이교도라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전체가 예슈아님을 거절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기독교가 예슈아님을 기독교만의 구원자로 만들고

거짓으로 전세계 대속물을 주장하기 위한 수작입니다.

진실은 예슈아님을 믿고 따른 유대 지파가 분명 있었으며

예슈아님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27

그리고 백성의 많은 무리가 그를 따랐는데

그들 중에는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애곡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배신한 지파를 제외하고는 유대인들은 예슈아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이교도라는 기독교의 거짓말에 속아선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십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율법까지 어겨가며 거짓말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슈아님을 믿는다면서 정작 예슈아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또한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사도 바울의 무율법주의 교리에 따라 자기 편한 대로 살아갑니다.

눈과 귀를 닫은 교인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교회의 목사를 믿습니다.

목사는 인간에 불과합니다. 인간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슈아님께서도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4

그가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폐쇄적 구원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목사는

교인들에게 교회 밖에서는 눈과 귀와 마음과 생각을 닫고 말씀을 듣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대로 말씀을 듣지 않으면 종말 때 심판의 길로 가게 됩니다.

     

최후의 날 포도원 주인께서 영을 주셔서 마지막 때에 오시는 인자가 계십니다.

인자께서 오시면 유일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말씀을 주시고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눈과 귀와 생각과 정신과 마음을 열라고 예슈아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목사의 말대로 눈과 귀와 생각과 정신과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인자님의 말씀까지 듣지 못하게 되고 구원의 길로 가지 못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3:9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마태복음 13장

13절 그러므로 내가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니

참으로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14절 그래서 예샤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15절 참으로 이 백성의 마음은 둔해지고 그 귀들은 듣기 어렵고 그 눈들은 감긴 것이다.

그들의 눈이 보고 그들의 귀가 듣고 그들의 마음이 깨달아 그들이 돌아섰으면

내가 그들을 고쳤을 것이다.

     

최후의 날 때 포도원 주인께서 인자 안에 계셔서 도둑처럼 오시니

예슈아님의 예언을 풀어주시고 참된 말씀도 주셔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십니다.

예언대로 예슈아님을 통해서 동편부터 서편까지 유일신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유일신 아버지의 예언을 이루시려 오신 예슈아를 알게 하시니

그때 이방나라에 유일신 아버지께서 사람을 보내시고 인자와 함께 하시며

하늘왕국 복음을 주시니 다시 예슈아님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예언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눈과 귀와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열어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아 구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목사, 권사, 전도사가

교회 밖에서 말씀 듣지 말라는 가르침은 심판받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지금의 시대에도 2000년 전 예슈아님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슈아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신 이유는

오늘날의 목사와 같은 제사장 바리새인이 로마와 헤롯왕을 등에 업고

예슈아님 죽이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과 귀를 닫고 제사장 바리새인 말만 잘 듣는

배신한 지파의 유대인들이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바리새인은 그 당시에 예슈아님의 말씀은 사람을 홀리니 들을 필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도 마찬가지로 교회 밖의 말씀은 들을 필요 없다고 가르칩니다.

목사의 말에 속지 말고 눈과 귀를 열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인자님께서 주시는 올바른 말씀을 들어야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친절하고 착하게 대해준다고 하여도 함부로 믿어선 안 됩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선하게 대해준다고 착하고 선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진짜 착하고 선한 사람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지키는 사람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 법 계명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그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

38절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고,

39절 둘째도 그것과 같은데 ‘너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라는 것이다.

40절 이 두 계명에 모든 토라와 예언서가 걸려 있다.

     

또한 둘째 계명의 진실은 이러합니다.

둘째 계명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율법주의 국가를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어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율법주의 국가로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율법주의 나라에 사는 아브라함의 후손자손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집도 병원비도 공짜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는 실제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지 않고

그저 잠시뿐인 위안만 주는 건 둘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편의점보다 교회를 더 많이 지으며

무율법주의 통치자, 무당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던 기독교는

둘째 계명을 어긴 죄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예슈아님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거짓된 삼위일체를 논합니다.

거짓된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비난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 교리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세상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무율법주의 통치자를 옹호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예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계명도 지키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사는 게 무엇입니까?

삼위일체를 받아들이면 영적으로 사는 것입니까?

예슈아님께서는 정결해야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된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 교리대로라면 예슈아님께서 전세계를 대속물해주셔서

예슈아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영적인 죄를 짓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기독교 카톨릭의 교리가 맞다면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예슈아님께서 모든 죄를 사하여주신다는 말은

사도 바울 교리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거짓된 삼위일체 교리와 무율법주의 교리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의 권세를 잠시 짐승에게 주셔서 인간들을 시험하십니다.

그 와중에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하셔서

깨어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도자님을 알아보고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즉, 기독교가 정답이라 예슈아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성경 어느 곳에도 없을뿐더러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구원받는다면 왜 베드로님은 할례를 시켰으며

불세례를 하시고 성령을 주었을까요?

육으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부정하게 살아도

교회에서 안수기도 받고 물세례 받으면 정결하게 영적으로 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슈아님께서는 정결하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정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율법 없이 사는 무율법주의가 정답이라면 예슈아님께서는 왜 죄없이 사셨을까요?

마찬가지로 예슈아님의 제자분들은 무엇하러 율법을 지켰을까요?

왜 무슬림들은 쿠란을 통해서 율법을 지킬까요?

기독교는 예슈아님만 믿으면 영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과 귀와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열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인도자님을 찾고

하나님의 토라 계명 할례 율법 예언 규례 법규를 지키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귀의하는 것이 영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거짓말에 속아선 안 됩니다.

     

유일신께서는 아브라함 후손 자손도 사랑하시고

이방나라에게도 기회를 주시기에

인도자이신 선생님께서는 그 뜻을 받드시어 이방나라를 책망하시며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유일신께서 깨어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참된 말씀을 전하도록 선생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슈아님께서는 유대인을 싫어해서 책망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유대인을 구원하시려고,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께서도 이방나라를 구원하시려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귀의하여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십니다.

     

부디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형제자매들이

기독교의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말고 진실을 깨달아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빛의 성전에서 배우는 이든님의 블로그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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