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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속 씨 비유의 참된 뜻





예슈아님께서 말씀하신 씨 비유




마가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씨 비유’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씨’라는 것은 온전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서, 성경, 쿠란, 외경이며

마태복음 4장 4절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씀’이 곧 빵이라 하셨습니다.


사탄들은 선지자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언제나 선지자님을 감시하며

선지자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훔쳐가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치우치게 합니다. 씨를 빼앗기는 것은 곧 말씀을 빼앗기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정신과 생각으로 품지 못했다는 것이자

무지하여 사탄들과 무율법주의자들에게 속아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이 곧 진리이자 생명이자 빛이고 빵입니다.


3절 : 들어라. 씨 뿌리는 자가 씨 뿌리러 나가서

4절 :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어버렸고,

5절 : 또 다른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 해가 뜨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다.

7절 : 또 다른 씨는 가시나무들 속에 떨어지니

그 가시나무들이 자라서 억누르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8절 : 또 다른 씨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으니

삼십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슈아님께서 말씀하신 ‘씨 비유’에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곧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영을 부으시는 것,

두번째는 인자께서 육체로 오셔서 육체를 통해 씨 곧 말씀을 뿌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뿌리는 씨는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영의 수준에 따라 영의 길을 가는지, 안가는지가 결정됩니다.

영의 수준이 높은 존재는 본인의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씨를 뿌립니다.

반면 영의 수준이 낮으면 사람 법 계명과 통치자의 교육을 받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른 체 육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씨를 뿌리는데 새가 씨를 모두 쪼아먹는다는 것은

국방부, 국정원, 경찰 등의 정보, 권력기관이 감시하고 있다가

말씀이 선지자로부터 따르는 자에게 주어졌을때 그 자에게 와서

온갖 가라지 누룩을 심고 말씀을 뺏어간다는 뜻입니다.

권력기관의 상징은 보통 독수리, 즉 ‘새’입니다.

새가 하늘에서 날면서 땅을 바라보는 것은

권력기관이 상층부에서 인간들을 감시하면서 정보를 캐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흙이 많지 않은 돌밭이란 건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이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씨를 뿌려야 그것이 알차게 자라나면서 퍼져나가지만

좋은 씨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포도원 농부가 선지자께서 사람들을 모으려 할 때마다

신도들을 이간질하여 선지자님께 가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리고 돌로 비유되는 건 장애물로, 통치자(과수원 농부)의 감청 도청과 포도원의 농부와 같이

스파이를 보내 이간질을 하여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흙이 많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며

좋은 씨가 자라날 것 같을 때 ‘해’로 비유되는 무율법통치자가 나섭니다.

‘해’는 ‘새’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믿음이 깊어지고 성장하지 않도록,

선지자님을 새싹의 싹을 잘라버립니다.


예슈아님께서는 세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해’와 ‘새’라 하셨습니다.

‘해’의 지시를 받는 ‘새’는 하늘에서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감시하고

씨가 뿌려질 때 그것을 뺏어먹어 본인이 성장을 합니다.

예슈아님과 같은 선지자께서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해’의 부하인 ‘새’와 ‘돌밭’ 즉, 스파이가 지식을 삼키거나

사람들이 싹을 자라지 못하도록 가라지 누룩을 뿌립니다.


‘해’는 통치자 정부이며 이들이 갖고 있는 돈과

경찰, 군대, 국정원 등의 권력으로도 비유되기도 합니다.


선지자님께 어떤 자가 새로 들어오면 ‘새’는 신입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캐며

돌밭이 신입의 존재를 전달하면 ‘해’는 그 싹을 뿌리뽑기 위해 갖고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그 뿌리가 타서 말라 죽게합니다. 그래서 새로 온 자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돈과 권력을 쥐고 나라를 뒤흔드는 무율법 통치자의 교육과

사도바울 교리를 배우고 믿고따르는 자들인 목사, 신부,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교인, 성도, 이들이 모두 ‘가시나무’가 됩니다.

가시나무는 포도원 같은 작물에서 자라나며 관리의 부족으로 자라납니다.

관리가 안된 가시나무는 불에 사르는게 원칙이고 가시나무를 많게하는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농부들과 그 씨로 자라난 열매로 인한 것입니다.


아무리 참된 말씀이 이들에게 주어져도 무율법 통치자의 사람법계명 교육 및

무율법 통치자와 함께가는 사도바울 교리를 배운 종교지도자와 신도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 체,

좋은 씨를 받아도 가시나무들이 열매를 억눌러 깨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즉, 좋은 씨를 거부하고 좋은 씨를 받은 자 옆에서 가라지 누룩을 심어

좋은 씨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는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좋은 땅이라는 건 정부의 영향력과 개입이 많지않고

사도바울 교리가 없는 정결하고 좋은 땅을 뜻하며

참된 말씀을 알아보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는 곳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예슈아님의 말씀대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되고

이러한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온 땅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들은 천사들과 선지자님들께 더욱 대적하기 위해

좋은 땅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13절 :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절 :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절 : 말씀이 길가에 뿌려진 자들은 말씀을 듣자마자 곧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다.

16절 : 돌밭에 뿌려진 자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쁘게 받아들이나

17절 : 그들 안에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견디다가

후에 그 말씀 때문에 고난이나 핍박이 있으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다.

18절 : 그리고 다른 씨들이 가시나무들 속에 뿌려진 자들은 말씀을 듣지만

19절 : 세상의 염려들과 재물의 속임수와 다른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억눌러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자들이다.

20절 :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자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다.


세상의 악은 하나님의 권세를 뺏어간 과수원과 포도원의 농부들입니다.

과수원의 농부인 무율법 통치자와 사도바울 교리를 따르는 무율법주의자들과

사탄(무율법 해, 새, 돌밭)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님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노리고 있으며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언제나 예의주시하면서 돌밭을 이용해

그 주위로 접근하게 하여 간계와 이간질 등의 가라지 누룩을 심으려하고 있습니다.

돌밭은 뿌려진 씨의 뿌리를 짓눌러 버리며 절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나

사탄들과 무율법주의 인간들의 유혹과 위협과 고난이 닥치면

곧 믿음은 사그라지며 사탄들의 유혹에 넘어가 좋은 씨를 뺏기는 자가 되어버립니다.


가시나무인 농부, 교인, 성도들은 짐짓 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육적인 것과 현세가 더 소중한 것이며 재물과 이성으로 유혹하며

말씀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논조를 펼쳐 믿음을 없애버리고

넘어지는 자가 되게끔 하고 심판의 길로 이끕니다.

가시나무의 이러한 유혹으로 참된 말씀이 잊어버리게 하며

가라지 누룩이 안에 자리잡히도록 하여 좋은 열매가 자라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니 어떤 자가 위와 같은 말을 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성서, 성경, 쿠란, 외경의 모든 말씀은 다 알고있는지, 토라계명, 율법은 지키는지,

정결한 자인지 먼저 알아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무율법주의자가 곁에 있으면 ‘근묵자흑’이란 사자성어와 같이 무율법에 물들게 되고

이는 죄와 악과 부정함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 죽는자가 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는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고 사랑하고 용서하되,

그 자가 하나님의 참된 모든 말씀을 알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믿지 않아야 합니다.


26절 : 또 그가 말씀하셨다. “하나님 왕국은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27절 : 그가 밤낮으로 자고 일어나는 동안에 그 씨가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28절 :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고, 그다음에는 이삭이고,

그다음에는 이삭의 충실한 밀알이다.

29절 :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니 이는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진정한 선지자님으로부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자라나고 있을 때,

그렇지 못한 자는 씨를 통한 싹이 얼만큼 크고 자라는지 밤낮으로 알지 못합니다.

씨로 말미암아 온전히 자라는 자가 일어나는 형상을 예슈아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 시절에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배운 자만 추수꾼 천사들께서 추수하셨습니다.


지금 기독교 카톨릭은 사도바울 교리로 인해 완전히 잘못되고 왜곡된 교리를

교인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말씀도 제대로 모르고

진리와 예언도 제대로 모르고 오로지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지금의 형국입니다.


지금은 사람보다 “말씀”이 중요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계명을 베껴서 만든 사람법계명은 인간우월주의이자

인간을 타락시키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씨 비유’는 하나님의 예언을 위해 깨닫지 말고 죽을 자는 죽으라고 하신 것이며

맨 마지막에 오실 영원한 복음을 갖고 오시는 분을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갖고 계신 분은 하늘왕국에서 오신 진리의 영, 마흐디 , 엘리야이신

키어리선생님이시며 하나님께서 키어리 선생님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거짓된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참되게 진실과 진리를 외치고 계시며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가족, 지인, 친척의 말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들이 온전한 성서, 성경, 쿠란, 외경을 알고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말씀”을 통해서 구별해야 하며

주변 인간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말씀을 통해 참되게 깨닫길 바랍니다.





- 빛의 성전에서 배우는 해커스님의 블로그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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